노벨상 이야기 - 별별정보
매년 10월 초 쯤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노벨상은 상의 세계적 권위가 최정상으로 연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감격적이고도 영예로운 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뉴스는 노벨상의 기원, 설명, 어떤 노벨상을 누가, 어떻게, 왜 받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보다 왜 우리나라는 못 받는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래서 잘 알려주지않는 내용 즉, 노벨상에 대한 심층적 고찰을 위해 노벨의 기원부터 그의 발명품, 그리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노벨상, 노벨상의 종류, 상금과 뒷 이야기까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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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알프레드 노벨
1-1). 알프레드 노벨은 그는 누구인가
1-2) 니트로글리세린은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다
2. 노벨상의 탄생
3. 노벨상 시상 분야
4. 노벨상의 상금 운용
5. 노벨상 수상자 선정 조건
6. 노벨상을 받은 사람
7. 한국인이 가지는 노벨의 집착
8.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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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프레드 노벨
일반적으로 노벨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이너마이트와 노벨상 2가지이다.
우리가 알고싶은 노벨상을 알기 앞서 노벨이라는 인물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노벨상을 알기위해서는 시작이 되는 인물을 알아야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하기 때문이다.
1-1) 알프레드 노벨은 그는 누구인가
Alfred Bernhard Nobel
1833.10.21~1896.12.10
노벨의 풀 네임은 알프레드 노벨로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이다.
재주있는 건축기술자 혹은 발명가, 공학자로 알려져있는 그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에게서 기초 공학을 배웠다.
1842년 아버지의 광산 폭발용 폭탄과 지뢰 군수사업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 후 스웨덴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를 교육받아 능숙히 구사했다. 사실 노벨의 유년시절 과학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 시절을 보내면서 문학가나 소설가로서의 길을 가기를 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소설가보다 발명가나 공학자로써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 문학과 언어는 항상 곁에 두었다. 이는 나중 노벨상 제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사견이다.
1850년 1년동안 파리에서 화학을 공부하다 1851년 미국으로 유학 길에 올라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하며 미국에 거주하는 스웨덴 발명가 존 에릭손 밑에서 4년간 일을 했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그는 러시아, 프랑스, 미국로 전전하며 화학과 기계공학 그리고 문학과 언어를 배운 공학도이자 지식인이다.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아버지의 영향일까 그는 폭약에 관심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니트로글리세린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나 초기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을 광산이나 건설, 제조업에서의 활용성을 위해 연구를 했다고 알려져있다. 폭발성이 뛰어났지만 휘발성이 강하고 안전상에 문제가 있는 니트로 글리세린을 지속적으로 연구함과 동시에 1862년 니트로글리세린 제조 공장을 세웠다.
1863년 아버지와 공동연구로 금속용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채운 후 목제 점화 플러그를 넣는 방식을 이용한 뇌관을 만드는데 성공해 신형 뇌관과 액체 폭약에 대한 개발로 특허를 얻었다.
그러던 와중 1864년 노벨 소유의 공장에서 폭발 사고로 인해 그의 막내 동생과 직원, 행인을 포함해 5명이 사망한다. 이를 계기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이 사건에서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의 액체라는 특성의 위험성을 깨닫고 좀 더 안전한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여러 실험했고 결국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 만든 고체 폭약 다이너마이트를 탄생시켰다.
다이너마이트의 탄생과 더불어 1865년 blastingcap(폭발성 캡슐)이라는 뇌관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열을 가하면 작은 금속용기에 담긴 뇌산수은이 폭발하도록 설계된 뇌관으로 이 역시 유명한 뇌관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다이너마이트의 탄생과 더불어 1865년 blastingcap(폭발성 캡슐)이라는 뇌관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열을 가하면 작은 금속용기에 담긴 뇌산수은이 폭발하도록 설계된 뇌관으로 이 역시 유명한 뇌관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1867년 영국,스웨덴, 미국에서 다이너마이트 관련 특허를 얻었고
1876년 다이너마이트(힘 Dynamics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신조어)를 시중에 판매했고 이로인해 노벨은 부와 명성을 얻게되었다.
이외에도 1875년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든 폭발성이 뛰어난 새로 개량된 다이너마이트를 고안하기도 했다.
1876년 다이너마이트(힘 Dynamics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신조어)를 시중에 판매했고 이로인해 노벨은 부와 명성을 얻게되었다.
이외에도 1875년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든 폭발성이 뛰어난 새로 개량된 다이너마이트를 고안하기도 했다.
1886년 다양한 분야에서의 다이너마이트의 사용으로 부를 축적한 노벨은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가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그가 은퇴 후에도 그의 마지막 여생까지 지속적인 발명에 몰두하여 355개의 특허를 취득, 화약 이외 만년필, 축음기, 전화기, 축전지, 백열등, 로켓, 인조 보석, 비행기, 수혈 등을 연구했다.
여담이지만 잘못알려진 사실 하나를 바로잡고자한다면 다이너마이트는 사실 군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다이너마인트 자체는 연기가 많고 폭발력이 약해서 군사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강력한 화약을 발명하고자하던 노벨은 실험 중 실수로 그 당시 유명한 액체 반찬고인 콜로디온 용액을 상처에 바른 채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다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투명한 젤리 형태 젤라틴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고안해서 만든 무기가 폭파 젤라틴으로 다이너마이트 3배 위력의 무기가 만들어졌다. 뿐 아니라 지속적인 군사용 무연화약 바리스타이트 Ballistite를 발명하면서 많은 화약 총기류에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그가 강력한 무기를 추구했던 이유는 강력한 무기로 전쟁의 위험성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의 생각이 작용했다고 전해지지만 이것도 그만 알 일이다.여담이지만 잘못알려진 사실 하나를 바로잡고자한다면 다이너마이트는 사실 군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다이너마인트 자체는 연기가 많고 폭발력이 약해서 군사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강력한 화약을 발명하고자하던 노벨은 실험 중 실수로 그 당시 유명한 액체 반찬고인 콜로디온 용액을 상처에 바른 채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다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투명한 젤리 형태 젤라틴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고안해서 만든 무기가 폭파 젤라틴으로 다이너마이트 3배 위력의 무기가 만들어졌다. 뿐 아니라 지속적인 군사용 무연화약 바리스타이트 Ballistite를 발명하면서 많은 화약 총기류에 사용하게 되었다.
1-2) 니트로글리세린는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다.
니트로글리세린 또는 나이트로글리세린, 삼질산 글리세롤이라 불리기도 한다. 분자량은 227.09, 비중은 1.596(15⁰ℂ)이고 물에 녹지 않으며 에탄올, 유기용매에 잘 녹는다.
C3H5(NO3)3으로 무색의 독성이 있는 폭발성 액체이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Ascanio Sobrero가 처음 합성하였으나 오히려 노벨이 연구하고 개발한 다이너마이트의 재료로 더 유명하다.
건설, 철거, 광업에 이용되다 군에의해 사용되며 무기로 사용된 것이 노벨을 더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단순히 다이너마이트의 재료에 불과하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은 무기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협심증 및 만성 심부전증 등 심장 질환에 혈관 확장제로 의학용으로 사용되는 그 자체로도 유익함이 존재하는 물질이다. 이외에도 전립선 암 치료제나 만성 항문균열 치료제로도 사용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C3H5(NO3)3으로 무색의 독성이 있는 폭발성 액체이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Ascanio Sobrero가 처음 합성하였으나 오히려 노벨이 연구하고 개발한 다이너마이트의 재료로 더 유명하다.
건설, 철거, 광업에 이용되다 군에의해 사용되며 무기로 사용된 것이 노벨을 더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단순히 다이너마이트의 재료에 불과하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은 무기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협심증 및 만성 심부전증 등 심장 질환에 혈관 확장제로 의학용으로 사용되는 그 자체로도 유익함이 존재하는 물질이다. 이외에도 전립선 암 치료제나 만성 항문균열 치료제로도 사용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여담이지만 1896년 사망 몇 달전 노벨은 협심증 진단을 받고 치료제로 니트로글리세린 성분의 약품을 받는다. 본인이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하여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물질을 본인은 의료용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두고 노벨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를 "내가 니트로 글리세린을 처방받다니 아이러니한 운명 아닌가? 그들은 화학자와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트리니트린이라고 부른다네." 라고 전해진다.
2. 노벨상의 탄생
노벨상의 탄생 일화 중 하나는 1888년 노벨의 형 루드비그 노벨의 죽음을 착각한 신문사 기자의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과 더불어 그를 '죽음의 상인'으로 지칭한 것을 동기로 노벨 재단의 구상을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나 그것은 본인만이 알 일이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군수업체를 도우려던 그가 기자의 기사에 탄식이나 유감을 표했을 수는 있으나 그것 때문에 노벨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벨은 진중했고 입이 무거웠다.
<노벨의 유언장 한글판>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서 세 번째 수정을 거친 그의 유언장을 근거로 그의 재산 이자를 유언의 대상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의 재산과 관련해 여러 자료를 조사한 결과 재단을 설립할 때의 그의 재산의 양은 3,300만 크로나(스웨덴) 중 세금을 제하고 3,100만(340만 유로, 440만 달러, 2000년대 가치로 환산 2억 달러, 원화 2000억 이상, 현재의 가치로 17억 크로나)로 보고있다.
당시의 재산 보유가 현재와 같지않고 부호가 매우 많지 않다는 것, 글로벌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의 가치로 환산한 2천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지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여담 중 하나로 그의 대다수의 재산을 국적에 상관없이 수상하라는 문구 때문에 스웨덴 내에서 재산을 해외로 유출한다는 명목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의 반대여론이 들끓었으며 스웨덴 국왕까지도 이를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또한 그의 재산을 얻으려던 친척들의 반대뿐 아니라 노벨이 연애편지를 썼다던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그의 부인이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그의 재산을 탐했다하니 그의 사후 상황이 그렇게 좋게만 느껴지지않는 현실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 유언 집행 위원회와 친족들과의 합의를 이루었고 그 진척상황이 비록 순탄치는 않았음에도 그가 죽은 1896년으로부터 4년 후 1901년부터 수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cf) 인터넷 조사를 거치며 그의 재산의 분배와 관련해 어떤 자료는 (20%는 일가친척
17%는 여러 단체에 기부, 나머지를 재단 기금으로 조성했다)부터 어떤 곳은 (90.3%를 재단 기금으로 조성했다) 어떤 곳은 (94%)라 적힌 곳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노벨이 많은 재산을 학문의 진일보에 대한 장려를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는 사실이 아닐까한다.
3. 노벨상 시상 분야
노벨상은 본래 노벨의 유언에 따라 5개의 분야에 해당되었다.
<구글링을 통해 얻은 사진들>
그것은 바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이다
그것은 바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이다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는 일반적으로 노벨의학상이라는 착각하지만 사실 노벨생리의학상이다. 명칭 또한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다
사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생리학은 생물학의 통칭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은 생명체의 과학적 기술의 진보에 대한 진일보한 업적을 달성한 대가에게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
노벨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중앙은행이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상을 새로이 제정했다. 그래서 1969년부터 수상을 시작했고 노벨이 언급한 5가지 분야의 노벨상은 Nobel Prize로 표기되지만 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표기된다.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는 많은 학문이 존재하고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힘든 분야 또한
매우 많다. 때문에 수학, 컴퓨터, 천문학, 지질 등 당시에는 비주류였다고 판단되는
학문들의 높은 가치나 새로이 생긴 학문의 등장은 노벨상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4. 노벨상 수상자 선정 조건
노벨의 유언장에서 수상자 선정의 일반 원칙은
해당 과학상 분야(물리,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문학상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평화상 분야에선 국가 간 우호 증진 또는 상비군의 폐지나 감축을 위해, 또는 평화 회의의 개최나 추진을 위해 최대 또는 최선의 일을 한 사람에게 수여토록 명시하고 있다.
해당 과학상 분야(물리,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문학상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평화상 분야에선 국가 간 우호 증진 또는 상비군의 폐지나 감축을 위해, 또는 평화 회의의 개최나 추진을 위해 최대 또는 최선의 일을 한 사람에게 수여토록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생존자만이 수상이 가능하다는 점이 있는데 이 때문에 과거에 큰 공헌을 했다해도
생존하지 않으면 수상이 어렵다는 점이 있다. 다만 수상자 선정 후 사망한 경우 수상자로 인정, 유족이 대리수상이 가능하다.
노벨상은 국적에 수상이 영향을 받으면 안되고 한 분야에 대해 공동수상은 최대 3명까지 수상이 가능하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이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하며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총회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하고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총회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하고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하며한다.
참고로 노벨 최종후보자는 절대적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수상일로부터 50년 이후에나 공개가능하다.
5. 노벨상의 상금 운용
노벨 재단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부가 있으며 7명의 정회원과 2명의 준회원으로 이루어진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는데 회원 자격은 스웨덴인이며 4개의 노벨상 수여기관의 임원들에 의해 선출된다. 이사장은 스웨덴 정부가 임명하고 이사회의 목적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
참고로 노벨 경제학상은 중앙은행에서 상금을 부담한다.
노벨은 유언에 부동산,주식,채권 등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안전한 방법으로 투자할 것을 남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재단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자산이 감소했다. 1950년 초 스웨덴 정부로부터의 자유로운 투자와 더불어 세금면제를 허용하면서 감소하는 수상금으로부터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2012년 금융위기로 800만 크로나로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2012년 기준 노벨상 기금은 총 5100만 달러이고 3100만 달러를 이자로 벌어들인다고 한다. 보통 수입의 2/3을 상금에 1/10은 재투자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각 종 행사 비용으로 충당한다.
6. 노벨상 수상 영예의 절차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노벨상을 수상한다.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10월 초에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그 절차는 다음 그림과 같다.
nobelprize org
<노벨상을 말하다 - 국립과천과학관 링크>
그 절차는 다음 그림과 같다.
<노벨상을 말하다 - 국립과천과학관 링크>
평화상만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수상식이 열리고 나머지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상 수상자는 금으로된 메달과 표창장, 그리고 받는 해의 수익금에 따라 상금을 달리 받는다. (대략 11~13억원가량을 받음) 또한 시상식 후 6개월 내에 자신들의 수상 업적과 관련한 강연을 해야한다.
7. 노벨상의 뒷면은 다 다르다!
노벨상의 앞면은 경제학상을 제외하면 모두 위와 같이 같지만 뒷면은 받는 분야마다 모양이 다르다. 참고로 경제학상은 다른 노벨 상의 앞면과도 다르지만 그 뒷면이 역시도 다르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서 조사한 결과 물리학과 화학은 같은 모양이지만 나머지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는 모두 다른 모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모양에 새겨진 글자 또한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7. 한국인이 가지는 노벨의 집착
노벨상에 대한 분석글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그럼에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집착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벨 수상 소요기간이나 수상 논문과 관련한 단순한 차트 2개만 보아도 이는 분명히 그 소요 시간이 길게 걸릴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지원되어야함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과학자는 왜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만 주장한다면 이는 과학계를 오히려 위축시킬 것이다. 현재 기초 과학의 기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며 그 지원 또한 지속적이고 꾸준함이 동반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큰 프로젝트에서는 큰 결과를 바로 그 정권에서 창출하기 바라는 못된 심보로는 성과를 얻기도 힘들 뿐 아니라 돈이 되지 못하는 일에는 뛰어들지않는 도전, 실험 정신은 사라질 것이다. 정작 돈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놓고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냐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나라 광복절 이후 과학계를 이만큼 끌고 온 것도 대단한 일임을 칭찬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왜 받지 못하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더욱이 우리나라 인구감소가 급격히 이루어짐에 따라 각 대학들의 구조조정은 필수적이고 이를 통해 과학계도 위축됨은 기정사실이다.
더 키워줄 생각을 해야할 때 임을 분명히 해야한다.
기자들도 자극적 기사를 내보내기보다 어떤 노벨상이 어떤 이유로 받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이 분야의 전망 분야에 대한 고찰을 주로 써야하지 성과주의에 급급한 현실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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